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 내전 (문단 편집) == 전개 == [[파일:external/rkka.ru/gvc3.jpg|width=600]] [[1917년]] 말 ~ [[1918년]] 초까지의 전황. [[파일:external/rkka.ru/gvc4.jpg|width=600]] 1918년 중엽 ~ 1919년 초반기까지의 전황. 내전 초기에는 중앙 라다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선언하고 돈-쿠반 지역의 [[카자크]]도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같이 적군에 맞서 싸웠으나 백군 간의 갈등 또한 만만치 않았다.] 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맞서 싸웠던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적군이 강제로 무장해제시키려고 들었다가 오히려 그들을 자극하여 그들이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등의 불리한 전황이 계속되었다. 여기에 협상국은 러시아에 지원했던 장비와 물자, 그리고 협상국 내에 남아 있던 러시아 지원용 물자를 백군에게 넘겼는데 이를 통해 백군의 전투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콜차크의 시베리아 백군은 서쪽으로 점차 모스크바를 향해 오고 있었다. 자세한 건 [[시베리아 내전]] 참고. 하지만 백군은 단 한번도 적군보다 장비 면에서 우세한 적이 없었다. 적군은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당시 이름), 툴라 조병창, 이브제스크 조병창 등 제국 시절의 핵심 총기, 야포, 탄약 생산 시설을 대부분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군은 내전 내내 장비 면에서 불리했다. 경제가 이미 붕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군이라고 해서 장비가 풍요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전황이 워낙 다급한 나머지 적군은 백군이 [[차르]]를 되찾을까 우려해 1918년 7월엔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니콜라이 2세]] 일가를 전원 처형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니콜라이 2세]]의 4녀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공주가 이때 몰래 빠져나와 살아남았다는 소문이 꽤 오랫동안 퍼졌다. 자신이 아나스타시야 공주라고 주장한 여성도 있었고 폭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의 작품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만화영화 <[[아나스타샤(애니메이션)|아나스타샤]]>도 만들어졌지만 아나스타시야 공주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소문은 거짓으로 밝혀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